AI 생성 음란물 처벌 공백 3중 딜레마 — '피해자 특정 불가능 무죄'·소급 불가 국가배상 청구·'가짜 티 나면 감경' 판례와 허영 의원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2026년 5월 현재, 한국 법원은 AI가 만들어 낸 성착취물을 세 가지 서로 다른 이유로 처벌하지 못하거나 처벌을 대폭 감경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첫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AI 생성 음란물 유포자에게 '피해자가 실존 인물임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둘째, 대법원은 2017년 딥페이크 제작자를 '법이 생기기 전 행위'라는 이유로 무죄 파기했고, 당사자는 이제 국가를 상대로 배상 청구까지 제기했다. 셋째, 학술 연구는 법원이 합성물이 '가짜 티'가 난다는 이유로 법정형을 감경하는 경향이 있음을 실증했다. 세 딜레마는 성폭력처벌법이 '실존 인물의 얼굴'을 전제로 설계된 시대의 산물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국회에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심 무죄 확정: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 '피해자 특정 불가능'
2025년 8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8단독 이정훈 판사는 성폭력처벌법 위반(허위영상물 유포)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김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씨는 2024년 11월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여성의 나체가 드러난 AI 합성 사진을 공유한 혐의를 받았다. 검사는 해당 사진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는 촬영물 등'에 해당한다고 보고 허위영상물 유포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사진의 원본이나 출처, 합성 방법 등을 확인할 자료가 없어 피해자가 실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가 규율하는 허위영상물의 요건 — '사람의 얼굴·신체 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영상물·음성물을 합성 편집'한 것 — 에서 '사람'이란 실존 인물을 뜻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AI가 완전히 생성한 가상의 신체에는 해당 조항이 적용될 수 없다는 논리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고, 사건은 법률 전문가 사이에서 '딥페이크 방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판결'로 즉각 주목받았다.
이 판결이 노출한 공백은 명확하다. 현행법의 '허위영상물'은 실존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를 무단 합성할 때를 전제한다. 그러나 AI 생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해자는 굳이 특정 피해자의 사진을 쓰지 않아도 사실적인 나체 이미지를 대량 생성해 유포할 수 있게 됐다. '누군가의 사진이 아니라 AI가 만든 것'이라는 방어 논리가 기소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법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는 AI 기술 시대에 성착취물 규제의 가장 큰 맹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2017년 딥페이크 사건: 소급 불가·대법원 무죄 파기·국가배상 청구까지
두 번째 딜레마는 '소급 처벌 불가' 원칙에서 비롯된다. 이 씨는 2017년에 지인 여성의 사진을 이용해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한 혐의로 2019년 1월에 기소됐다. 당시 적용된 법조문은 형법 제244조의 '음란물 제조·소지·배포죄'였다. 서울고등법원은 이 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고, 이 씨는 실제로 복역했다.
그러나 2024년 4월, 대법원은 이 씨에 대한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의 논거는 이랬다: '컴퓨터 파일은 음란물 제조·배포죄에서 말하는 물건(物件)에 해당하지 않는다.' 딥페이크 영상이 형법상 '물건'이 아니라는 해석이었다. 딥페이크를 직접 규율하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는 2020년 5월에야 시행됐고, 이 씨의 행위는 그보다 3년 전인 2017년의 일이었다. 형사불소급 원칙상 새 법을 과거 행위에 소급 적용할 수 없었다.
무죄 파기 이후 이 씨가 취한 다음 수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씨는 헌법 제28조에 근거해 서울고등법원에 형사보상청구를 신청했다. 징역 8개월을 실제로 복역했지만 결국 무죄가 됐으니, 억울하게 구금된 기간에 대한 보상을 국가로부터 받겠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2009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선고 전 구금 기간이 집행유예 기간에 산입되는 경우에는 구금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지만, 변호사 비용 등 소송비용 일부는 보상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피해자 여성들이 가해자의 국가배상 청구를 지켜봐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가짜 티 나면 감경': 법원 판결 분석이 실증한 세 번째 공백
세 번째 공백은 처벌 단계에서 발생한다. 여성신문 등 국내 매체가 보도한 디지털 성범죄 판례 분석 연구에 따르면, 한국 법원에는 AI 합성 음란물이 '가짜처럼 보일수록' 피해의 심각성을 낮게 평가해 형을 감경하는 경향이 실증됐다. 연구는 수십 건의 딥페이크 판결문을 분석해, 합성 품질이 낮아 피해자의 얼굴과 나체의 불일치가 눈에 띄는 경우 법원이 양형에서 '피해 정도가 가볍다'고 평가한 사례들을 확인했다.
이 논리는 피해자의 현실 경험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피해자들은 합성물의 완성도에 관계없이 '자신의 얼굴이 음란물에 쓰였다'는 사실 자체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국제 연구에서도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의 트라우마 정도는 실제 성폭력 피해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된다. '가짜 티'는 피해자의 고통을 경감시키지 않는다. 합성 기술의 품질로 피해의 중대성을 측정하는 양형 논리는 범죄의 본질 — 동의 없이 타인의 신원을 성착취물에 결부시키는 행위 자체 — 을 외면한 것이다.
허영 의원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실존 인물 요건' 삭제
세 가지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은 2025년 9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핵심은 단 하나다: '실존 인물 여부와 상관없이' AI를 이용해 사람의 신체 또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성적 영상물을 생성하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이라는 표현이 핵심이다. 이는 미국 버지니아주가 딥페이크 음란물 규제를 '실존 인물처럼 인식될 수 있는 사람'으로 확장한 입법 방향과 일치한다.
허 의원은 개정안 발의 취지에서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에 법이 신속하고 정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무죄 판결의 논리적 근거 자체가 사라진다 — 가해자가 'AI가 만든 것'이라고 항변해도 처벌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개정안은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본회의 통과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국제 비교: 버지니아·캘리포니아·영국의 접근법
한국이 '실존 인물 요건' 논쟁을 벌이는 동안, 해외 입법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딥페이크 음란물 규제 대상을 '실존 인물처럼 인식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해, 완전 AI 생성 콘텐츠도 규제 범위에 포함시켰다. 캘리포니아주는 '실수할 수 있을 정도로 진짜처럼 보이는' 이미지의 의도적 배포를 금지함으로써 현실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영국은 성인 대상 합성 성적 콘텐츠의 배포 자체를 피해자 특정 여부와 무관하게 규율하는 방향으로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공통점이 있다. 세 나라 모두 '특정 피해자의 동의'가 아니라 '합성 콘텐츠 자체의 사회적 해악'을 처벌의 근거로 삼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패러다임 전환은 한국 법원이 여전히 '누구의 얼굴인가'를 묻는 데 머물러 있는 것과 대조된다. 학계에서는 한국도 '피해자 특정 없는 합성 성적 콘텐츠의 사회적 해악'을 독립적인 처벌 근거로 명문화하는 입법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법 개선을 위한 4가지 과제
세 가지 공백이 드러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네 가지 방향의 동시 입법이 필요하다. 첫째, '피해자 특정 없는 AI 성착취물 규제' 조항을 신설해, 실존 인물 여부와 무관하게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성적 합성물을 처벌 대상으로 명시해야 한다. 허영 의원 개정안의 신속한 통과가 최우선이다. 둘째, 양형기준에서 '합성 품질'을 피해 경감 사유로 허용하는 논리를 명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5년 하반기부터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개정 작업에 착수했으며, 이 지점을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
셋째, 소급 처벌 불가 상황을 고려해 현행법 시행 이전 제작물에 대해서라도 피해자에 대한 삭제 지원과 민사 배상 청구 경로를 확충해야 한다. 형사 처벌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피해자가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는 피해자 중심 법률 경로가 필요하다. 넷째, 국가배상 청구를 역이용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나타나지 않도록, 딥페이크 처벌법 체계의 역사적 경과를 고려한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 기술이 법보다 앞서나가는 현실에서, 법원이 '기술의 사각지대'를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손실로 전가하는 구조는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참고 자료 / References
- S. Korea: Court clears AI porn distributor, citing lack of identifiable victim — Business & Human Rights Resource Centre
- Man jailed for deepfake porn seeks state compensation after acquittal — The Korea Herald
- 쏟아지는 AI 음란물…가로막힌 법적 처벌 — Daum
- 허영 의원 'AI 생성 음란물 처벌' 법개정 추진 — G1TV
- "AI 성착취물, 가짜 티 나면 '감경'"… 디지털 성범죄 판례 분석 나왔다 — 여성신문
- 대법원 양형위, '딥페이크 범죄' 양형기준 강화 추진 — 로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