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허위영상물 '피해자 특정 불가' 무죄 — 의정부 고양지원 판결이 드러낸 성폭력처벌법 공백과 허영 의원 개정안

2025년 8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8단독 이정훈 판사는 AI로 합성된 여성 누드 사진을 텔레그램 대화방에 공유한 3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사진의 원본이나 출처, 합성 방법 등을 확인할 자료가 없어 피해자가 실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AI가 완전히 생성한 이미지라면 법이 요구하는 '실존 피해자'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판결은 한국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가 가진 근본적 공백을 정면으로 드러냈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1년간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지원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는 1,807명으로 전년 대비 128% 급증했으며, 피해자의 92%가 10~20대 여성입니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5년 9월 12일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영상물'에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2026년 7월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는 여전히 지체되고 있습니다.
사건 개요 — 텔레그램 AI 합성 누드, 기소와 무죄 판결
피고인 김모씨(30대)는 2024년 11월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여성이 나체를 드러낸 AI 합성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검찰은 해당 사진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영상물'에 해당한다고 판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이 조항은 2020년 도입된 허위영상물 처벌 규정으로,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얼굴·신체를 편집·합성·가공한 영상물을 반포한 자'를 처벌합니다.
그러나 2025년 8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이정훈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핵심 논거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할 증거 부재였습니다. 피고인은 '해당 이미지는 실존 인물을 합성한 게 아니라 완전히 AI가 생성한 가상 인물'이라고 주장했고, 검찰은 이를 반박할 원본 사진, 합성 과정, 실존 피해자의 정체를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법원은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의 처벌 대상이 '실존하는 특정 인물'에 대한 행위를 전제로 한다고 좁게 해석하며, '가상의 인물이라면 성적 수치심 등을 유발할 수 없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의 구조적 공백 — '실존 피해자' 요건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는 '사람'의 얼굴·신체를 편집·합성·가공한 영상물을 처벌합니다. 이 '사람'이 실존하는 특정 인물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실존 인물로 오인될 수 있는 가상 인물도 포함되는지가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고양지원 판결은 전자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AI가 완전히 생성한 이미지, 즉 특정 실존 인물의 얼굴을 가져다 쓰지 않고 AI가 처음부터 만들어낸 인물 이미지는 '사람'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 판결이 AI 음란물의 처벌 범위에 심각한 공백을 만들었다고 분석합니다. AI 이미지 생성 기술의 특성상, 가해자는 생성된 이미지가 특정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언제나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텔레그램 등 비공개 채널에서 유통되는 AI 합성 음란물의 경우, 피해자를 특정하기 위한 원본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국 검찰이 '실존 피해자'를 특정하지 못하면 처벌이 불가능해지는 구조적 역설이 발생합니다. 서강대 이종수 교수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입법의 공백이 있다면, 그 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허영 의원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영상물'로 처벌 범위 확대
고양지원 판결이 촉발한 입법 요구에 가장 먼저 응답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허영 원내정책수석부대표였습니다. 허 의원은 2025년 9월 12일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현행 '사람의 얼굴·신체'를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영상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AI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처벌이 가능해집니다. 허 의원은 "AI가 대한민국의 혁신 동력이 되는 동시에 사회적 위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AI 기술 발전과 사회적 해악 방지의 균형을 강조했습니다.
개정안은 아동·청소년 관련 처벌도 강화합니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AI가 합성한 이미지에서 실존 아동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의 영상을 성착취물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경우 이에 상응하는 규정이 부재했습니다. 개정안은 이 불균형을 해소하여 성인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AI 합성 음란물도 실존 피해자 입증 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유포뿐 아니라 생성·소지·구매·시청도 처벌 대상에 포함하고, 영리 목적의 유통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같은 법, 다른 결과 — 2025~2026년 한국 딥페이크 판결의 이분법
고양지원의 '피해자 특정 불가' 무죄 판결 외에도, 2025~2026년 한국 법원은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 극명히 다른 결과들을 내놓았습니다. 실형 사례를 보면, 여성 연예인 얼굴을 AI로 합성한 성착취물을 영리 목적으로 판매한 30대는 대구고법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7년 취업 제한을 선고받았습니다. 여교사들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해 SNS에 유포한 10대는 인천지법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실형, '인격살인'이라는 표현과 함께 민사 손해배상 책임까지 인정받았습니다. 반면 무죄·집행유예 사례도 이어졌습니다. 여성 방송인 딥페이크를 텔레그램에 7회 게시한 20대는 청주지법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법원은 '초범이고 피해자가 낯선 사람'이라는 점을 감경 사유로 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이분법의 핵심에 법문에 없는 '정교함(완성도)' 기준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2026년 7월 21일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한국 법원들은 법적 근거 없이 합성 이미지의 '완성도'를 사실상 양형 또는 유·무죄 판단의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교한 딥페이크는 실형, 조잡한 딥페이크는 집행유예 또는 무죄라는 비공식 공식이 형성된 것입니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판사들이 '제작 의도', '사실 왜곡 정도', '피해 가능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며, 기술적 완성도보다 법적 해악의 존재 여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국제 비교 — 피해자 특정 없이도 처벌하는 영국·미국의 입법 모델
영국은 2023년 온라인안전법(Online Safety Act) 제정, 2024년 형사사법법(Criminal Justice Act) 개정을 통해 딥페이크 성적 이미지의 생성·공유 자체를 실존 피해자와 무관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공유 행위는 무조건 범죄이며, '실제 피해자가 없다'는 항변을 법적 방어 사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영국 내무부는 입법 이유로 '피해자 특정 여부와 관계없이 딥페이크 성적 이미지 자체가 사회적 해악을 유발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미국은 연방 단위의 통일된 법이 없으나, 버지니아주와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AI 생성 성적 이미지를 실존 피해자 증명 없이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버지니아주법은 '실제 인물처럼 보이도록 제작된 이미지'라는 기준을 사용하며, 캘리포니아주법은 '합리적인 사람이 특정 개인으로 오인할 수 있는 이미지'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합니다. 두 법 모두 기준의 중심이 '실제 피해자 특정'이 아닌 '사회 일반의 오인 가능성'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고양지원 해석과 정면으로 대비됩니다.
2026년 7월 법안 심의 현황과 피해자 단체의 요구
허영 의원이 2025년 9월 발의한 개정안은 2026년 7월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피해자 단체들은 심의 지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피해자 1,807명이 지원을 받는 동안에도 법은 여전히 2020년 기준에 머물러 있다"며 "AI 기술이 매달 진화하는 속도로 피해 수법도 진화하는데, 입법은 1년 이상 제자리"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지원 대상 피해자의 92%가 10~20대 여성이라는 사실은, 이 공백이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직접적 위험을 야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법무부와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는 개정안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와 '허위 신고 가능성'을 이유로 추가 검토 의견을 냈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기준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허 의원 측은 "영국·미국도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운용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고양지원 판결 이후 반복되고 있는 '피해자 특정 불가' 무죄 사례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References
- Business & Human Rights Resource Centre — 한국: 법원, 피해자 특정 불가능 이유로 AI 음란물 유포자 무죄 판결 (2025)
- 머니투데이 —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 강화에도 '법 해석' 논란 여전 (2026.07.21)
- 에펨코리아 — 법원, AI로 제작한 음란물 유포해도 실존인물 아니면 무죄 (2025)
- G1TV — 허영 의원 AI 생성 음란물 처벌 법개정 추진 (2025.09)
- 국회의안정보시스템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2025)
- SBS 뉴스 — 텔레그램 써도 잡힌다: 여성 방송인 딥페이크 유포 20대 집행유예 (2026.02)